700년간의 주요 사건과 역사들! 고구려 왕 계보

고구려왕 계보 700년간의 주요 사건과 역사!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찾아온 민슈입니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입니다.

오늘은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구려의 시작과 끝을 정리하기 위해 고구려왕의 계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곧 시작할게요!

제1대 동명성왕(고주몽)(기원전 37년~기원전 19년)

동부여 금와왕이 데려온 하백의 딸 유화가 알을 낳고 그 알에서 태어난 것이 고주몽입니다.

어려서부터 활을 매우 잘 쏘고 지략이 뛰어나 많은 시기를 받아 살기 위해 졸본부인으로 남하한 뒤 고구려를 짓게 됩니다.

2대 백합왕(기원전 19년~기원후 18년)

동명성왕의 장남이었던 그는 아버지 고주몽을 찾기 위해 부여에서 고구려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태자가 되어 왕위를 이어 수도를 졸업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겼고, 이복형제의 비류, 본조형제와는 왕권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제3대 대무신왕(18년~44년)

유리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구려의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그는 부여와 고구려 간의 전쟁에서 대소왕을 죽이는 등 상당한 무력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4대 민중왕(44년~48년)

대무신왕이 44세의 나이로 서거하자 태자가 너무 어려서 대무신왕의 형제인 민중왕이 즉위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장사만 하고 능묘는 만들지 말라고 명하는 등 상당히 검소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5대 모본왕(48년~53년)

대무신왕의 장남이었던 나이가 들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는 성격이 매우 포악하여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본왕은 신하 두로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제6대 태조왕(53년~146년)

2대 유리왕의 손자인 태조왕은 정자를 정복하고 영토를 넓히고 중앙정권체제를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왕위세습을 통해 고대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때 고구려는 크게 성장하고 제대로 된 국가의 틀을 잡아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가 됩니다.

태조왕의 긴 임기의 경우 다소 황당한 내용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합니다.

7대 차대왕(146년~165년)

태조왕 후기에 장군으로 활약하여 후한의 침입을 막고 반대로 현도와 요동을 공격하여 승리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늙은 태조왕을 대신해 국정과 군사를 총괄하고 양신 등 측근들에게 왕위찬탈을 권유받아 오랫동안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146년 쿠데타가 발생하기 직전에 태조왕이 선위하여 왕위에 오릅니다.

많은 적들이 왕위에 오르자 반대 세력을 처형하고 쫓아냈지만 결국 명립답부에 살해당하게 됩니다.

8대 신대왕(165년~179년)

차대왕이 폭정을 일삼던 시기에 산속으로 도망쳐 숨고 있는 가차대왕이 애도하며 왕위에 오른다.

기록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젊은 나이에 왕위를 계승한 그는 왕권과 고구려를 안정화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제9대 후국천왕(179년~197년)

왕후의 친척인 어비류, 좌기여가 난을 일으키자 진압하고 이후 농부 출신의 을파소를 국상에 임명하여 빈민구제책으로 진대법을 시행합니다.

제10대 산상왕(197년~227년)

고국원왕의 둘째 동생으로 고국원왕이 아들 없이 승자 왕후 우씨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된 인물입니다.

11대 동천왕(227년~248년)

우씨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인자하게 다스리고 백성들이 그에 따라 영토확장에 힘쓰고 철갑기병을 이끌고 위나라를 공격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248년에는 신라와 화친을 맺습니다.

12대 중천왕(248년~270년)

중천왕이 왕이 되면 그 동생의 예물과 사구 등이 모반을 일으키지만 제압당해 중천왕에게 처형당하고 위나라가 쳐들어갔을 때 5천 기병으로 적 8천 명의 목을 베어 승리합니다.

13대 서천왕(270년~292년)

북방정책을 추진하다가 숙신(북적)이 내려와 공격하면 동생 달가를 보내 격퇴하고 역으로 영토를 확장하게 됩니다.

서천왕은 동생 이루와 소발이 반란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자 이들을 속인 뒤 처형합니다.

14대 봉상왕(292년~300년)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삼촌 타르고와 동생 도르고를 역모로 죽입니다.

연나라 침입을 막은 그였지만 사치와 방탕에 빠져 국상의 창조리에 폐위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제15대 미천왕(300년~331년)

봉상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석고의 아들로 장절리에 의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낙양군 점령 등 영토 확장에 큰 기여를 하게 된 왕입니다.

제16대 고국원왕(331년~371년)

연나라 모용황이 쳐들어와 크게 패하여 요동지방을 빼앗깁니다.

백제 근초왕과 평양에서 싸우다가 화살을 맞고 전사하게 됩니다.

고구려 역사상 유일하게 적에게 살해당한 왕으로 남습니다.

17대 소수림왕(371년~384년)

백제와 화친을 맺은 뒤에도 읍을 국내성으로 옮깁니다.

372년에는 중국의 전진으로부터 순도가 불상과 경문을 가져와야 비로소 불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태학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373년에는 공식적으로 율령을 반포하여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제18대 고국양왕(384년~391년)

고구려의 두 왕은 요동과 백제를 정벌하고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요동성을 공략하기 위해 후연과 자주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19대 광개토대왕(391년~413년)

불교를 신봉하는 왕으로 후손을 물리치고 거란을 정복하여 만주까지 영토를 넓히게 되었고,

백제의 관미성과 위례성을 함락하고 한강 이북을 차지하며 고구려 전성시대를 맞아 신라에 군사를 지원합니다.

제20대 장수왕(413년~491년)

장수왕은 수도를 평양성으로 옮겨 남하에 착수하여 승려 도림의 계책으로 백제 한성을 함락하고 개롱왕을 죽였으며 이후 신라 7개 성을 함락시켜 고구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21대 문자명왕(491년~519년)

부여를 멸망시키고 신라와 백제를 공격하여 고구려 영토를 넓히는데 주력하겠습니다.

22대 안왕(519년~531년)

선대 태왕에게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백제와 두 번 싸워 우위를 점하고 영토를 안정적으로 관리합니다.

23대 안원왕(531년~545년)

양국, 동위와 국교를 맺습니다.

가뭄,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로 국정에 어려움을 겪고,

그의 둘째 아내와 셋째 아내가 왕위를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많은 소동이 발생합니다.

24대 양원왕(545년~559년)

돌궐의 침입을 막았지만 신라와 백제의 침략으로 한반도 중부의 거의 모든 영토를 잃으면서 고구려 전성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25대 평원왕(559년~590년)

그 유명한 평강공주의 아버지이자 사위인 온달이 북주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워 유명해졌습니다.

귀족간 내전으로 큰 위기에 처한 고구려를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가 조공을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였습니다.

26대 영양왕(590년~618년)

수 문제가 30만 대군을 이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격퇴하고 백제와 신라를 공격하여 고구려 남쪽 국경지역을 안정화시켰습니다.

수양제가 113만 대군에 침입했는데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이 사수에서 모두 섬멸합니다.

(살수대첩)

제27대 영류왕(618년~642년)

외교에 능하여 수양제에 붙잡힌 포로들을 되찾는 데 주력합니다.

624년에는 도교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천리장성을 쌓았고, 이후 연개소문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28대 보장왕(642년~668년)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게 된 연개소문에 의해 옹립되었습니다.

신라와 당의 연합으로 고구려는 멸망하게 됩니다.

이상으로 정말 길게는 7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구려왕의 계보를 마치겠습니다.

고구려왕 계보 말고도 궁금한 역사가 있으면 댓글 달아주세요!